글/시(詩)기적절 책읽는정오 2020. 11. 5. 09:36
영원한 사랑을 꿈꿀 때 시계 한승원 우리 다음 생에는 시계가 되자 너는 발 빠른 분침으로 나는 발 느린 시침으로 한 시간마다 뜨겁게 만나자 순간을 사랑하는 숨결로 영원을 직조해내는 우리 다음 생에는 시계가 되자 먼지 알 같은 들꽃들의 사랑을 모르고 어찌 하늘고 땅의 뜻을 그 영원에 수놓을 수 있으랴 그리고 우리 한 천년의 강물이 흘러간 뒤에 열두 점 머리 한가운데서 너와 나 얼싸안고 숨을 멈추어버린 그 시계 다음 생에는 우리 이 세상 한복판에서 너의 영원을 함께 부둥켜안은 미이라가 되자 박새들의 아프고 슬픈 사랑을 모르고 어찌 하늘과 땅의 뜻을 그 영원에 수놓을 수 있으랴 열애 일기 - 한승원 지음/문학과지성사 한승원 1966년 단편소설 [목선]으로 데뷔한 이후 수많은 작품을 통해 우리 시대의 소설가로 ..
글/시(詩)기적절 책읽는정오 2018. 5. 18. 07:30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한강 지음/문학과지성사
글/시(詩)기적절 책읽는정오 2018. 2. 21. 22:18
노인을 돕는다는 것찰스 부코스키 오늘 은행에서 줄을 섰을 때 내 앞에 서 있던 영감님이 안경을 떨어뜨렸다 (다행히 안경은 안경집 안에 있었다) 영감님이 몸을 숙이는데 하도 힘들어 보이길래 말했다, "잠깐만요, 제가 주워 드리죠……" 하지만 내가 안경을 주웠을 때 영감님은 지팡이를 떨어뜨렸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까맣고 아름다운 지팡이. 나는 안경을 돌려주고는 지팡이를 주워 건네면서 영감님을 안심시켰다. 영감님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앞으로 갔다. 나는 그의 뒤에 서서 기다렸다 내 차례가 오기를.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 찰스 부코스키 지음, 황소연 옮김/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