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을 꿈꿀 때 [시계 - 한승원]

영원한 사랑을 꿈꿀 때 

 

시계

 

한승원

 

우리 다음 생에는 시계가 되자

너는 발 빠른 분침으로

나는 발 느린 시침으로

한 시간마다 뜨겁게 만나자

순간을 사랑하는 숨결로 영원을 직조해내는

우리 다음 생에는 시계가 되자

 

먼지 알 같은 들꽃들의 사랑을 모르고 어찌

하늘고 땅의 뜻을 그 영원에 수놓을 수 있으랴

그리고 우리

한 천년의 강물이 흘러간 뒤에

열두 점 머리 한가운데서

너와 나 얼싸안고 숨을 멈추어버린

그 시계

다음 생에는 우리 이 세상 한복판에서

너의 영원을 함께 부둥켜안은 미이라가 되자

박새들의 아프고 슬픈 사랑을 모르고 어찌

하늘과 땅의 뜻을 그 영원에 수놓을 수 있으랴

열애 일기 - 10점
한승원 지음/문학과지성사

 


한승원 

1966년 단편소설 [목선]으로 데뷔한 이후 수많은 작품을 통해 우리 시대의 소설가로 자리한 한승원. 20년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남쪽 바다 전남 장흥으로 옮겨가 토굴에 자리 잡은 그는 고향에 빚을 갚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승원 [韓勝源] - 살아있기 위해 글을 쓰는 작가 (인생스토리)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한강 작가의 친부입니다. 「열애일기」는 투병 생활 중 아내에게 쓴 시를 모은 시집으로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애틋함이 돋보이는 시집입니다. 특히 '시계'는 그중에서도 일품으로, 많은 이에게 사랑 받는 시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이 이번 생으로는 모자르다고 생각하신다면 사랑하는 이에게 이 시를 선물해보는 건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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