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서평 책읽는정오 2019. 4. 19. 08:30
존엄성을 잡아먹는 괴물 쉰들러 오스카가 만들어 준 자리, 키가 작아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기 위해 올라가야 했던 그 '나무상자'는 주인공 리언에게 생존이었다. 그 나무상자는 홀로코스트라는 최악의 광기에 현기증을 느끼던 이들의 마음 속에 깊게 뿌리 박고 근사한 그늘이 되어준다. 「나무 위의 소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을 막아낸 독일인 '오스카 쉰들러'의 '리스트'에 올랐던 가장 어린 리언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았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지며 유명해진 '쉰들러 리스트'는 오스카 쉰들러가 새로 지은 공장에서 일할 유대인의 명단으로, 수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기게 해준 '면죄부'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죄인이었던 리언은 전쟁이 오기 전 천진난만했던 시절부터 인간 취급을 받지 ..
책/서평 책읽는정오 2019. 4. 16. 09:29
어리고 탁월한, 그리고 잔혹한 재능 사회가 재능을 닫아버리는 경우는 어떤 게 있을까. 엄마를 씹어 먹고 구워 먹는다는 등 잔혹한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됐던 '학원가기 싫은 날'을 보고 어린 작가의 출중한 재능이 눈을 감아 버릴까봐 걱정됐다. 「솔로강아지」는 초판에 담겼던 '학원가기 싫은 날'을 빼고 다른 시 아홉 편을 대신 채워 내놓은 개정판이다. 나는 대학에서 시를 배우며 누군가에게 '시'와 '시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방법을 몸에 익혔다. 시인의 표현을 더 깊이, 많이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느끼게 됐다. 이 어린 작가는 이미 '시'의 모습을 완전히 갖추고 있었다. 다른 시인과 다른 점을 찾자면 표현하는 소재뿐이었다. 이순영 작가는 나이에 걸맞은 일상적인 소재를 언어로 훌륭히 표현해내는, 다 큰 시인이 ..
책/서평 책읽는정오 2019. 3. 20. 05:14
내 방에 누군가 들이는 일 어렸을 때 그랬다. 집에 들어오면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책을 봤다. 나 말고 아무도 들일 생각이 없었던 방안에서 혼자 책을 보는 시간은 특별했다. 결말이 보이지 않는 소설처럼 영원히 그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책을 보는 일은 내세울만한 단 하나의 우월감이었고 누군가 그 우월감으로 가득싸인 방에 침범할까 겁나 영역을 지키는 짐승처럼 촉각을 곤두세웠다. 뫼비우스 띠에 발이라도 얹은 듯이 겉돌고 있었다. 의 주인공, 소희와 같은 열다섯 살이었다. 소희는 아빠의 죽음과 엄마의 재혼으로 고모 집에서 얹혀 사는 아이였다. 매사에 눈치를 보고 꿈인 것을 확인한 후에야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로 자란다. 이야기가 시작되며 엄마를 다시 만나고 돈이 많은 새아빠와 같이 살게 된다. 아..
책/서평 책읽는정오 2018. 7. 29. 13:30
「미라클 일주일 지갑」 줄일 수 있는 지출은 반드시 있다 나름대로 아낀다고 아끼는 것 같은데 왜 항상 통장 잔고는 간당간당할까? 월급은 통장을 스쳐지나갈 뿐이라는 말이 절로 실감나는 요새 물가다. 이제 막 월급을 받기 시작한 사회 초년생부터 가정에 자녀를 둔 부부, 은퇴를 앞둔 노년까지 가계 관리에 필요성을 느낀다면 「미라클 일주일 지갑」을 참고해보자. 지은이 요코야마 미쓰아키는 일본 금융·저축 분야에서 1인자로 꼽히는 사람인데, 특이하게도 돈 많은 사람과는 일을 하지 않는 재테크 컨설턴트다. 평범한 가정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붙잡고 기적을 바라는, 이른바 '소시민'을 상대로 돈관리를 해주며 무려 1만 명의 인생을 플러스로 바꿨다고하니 신뢰가 간다. '나 정도의 수익으로도 가계 관리가 가능할까?' 하는 사..
책/서평 책읽는정오 2018. 7. 28. 07:30
「음식의 심리학」 맛있게 차려진 흥밋거리 이 책의 가치를 결정하는 길은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었다. 첫 번째는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는 심리학을 앞세워 거의 가십 수준의 지식을 풀어내는 길. 두 번째는 삶과 밀접하게 맞닿은 식(食)을 심리학으로 파고들어 더 똑똑하고 지혜로운 삶의 기본 요소로 만드는 길이다. 지은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글을 썼을지는 모르지만, 「음식의 심리학」은 첫 번째 방향에 조금 더 가깝다. 이 그릇에 담긴 심리학이 식생활에 얼마나 현명함을 더하는가, 하는 점보다는 흥미로운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점으로 책의 가치를 높일만하다. 예를 들자면 14쪽에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험심이 강하고 단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회적인 성격으로 남을 돕기를 좋아한다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이를 ..
책/권하는 책 책읽는정오 2018. 5. 22. 12:04
영혼이 삶을 지나가며 겪는 아픔 한강이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은 일은 여러 큰 의미가 있었다. 우리나라 소설가도 3대 문학상(매체에서 일방적으로 붙인 타이틀이긴 하지만)을 받을 정도로 성장했다, 라는 의미. 한강 개인에게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던 '소설가 한승원의 딸, 한강'이라는 수식을 이젠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으로 바꿔버렸다는 의미. 이렇게 소설가로 이름을 알린 한강인데, 한강은 원래 소설로 등단하기 이전에 시로 먼저 등단을 했던 작가다. 시로 등단한 후 20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시를 묶어 낸 시집이 바로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이 책이다. 그녀가 20여 년 동안 써왔던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 시집 역시 영혼이 서려있다. 날카로운 날..
책/권하는 책 책읽는정오 2018. 5. 16. 07:30
[서평] 「5초의 법칙」 용기로 인생을 바꾸는 시간 미루는 습관에 대한 오해가 많다. 사람이 할일을 미루는 일은 게을러서 라는 생각이 오해다. 책에 따르면 미루는 습관은 스트레스를 피하려는 자기 방어 기제로서, 미워하고 자책해야 할 습관이 아닌 용서 해야 할 감정이다. 이처럼 「5초의 법칙」 여러 가지 심리학적, 과학적인 근거를 통해 미루는 습관에 접근하고 이를 해결할 방안으로 '5초 법칙'을 제안한다. 과할만큼 많이 들어간 실제 사례와 후기로 '5초 법칙'의 효용성을 증명한다. 결심했던 일을 모두 실행에 옮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이 「5초의 법칙」은 하나의 지푸라기가 된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당신의 생각대로 될 것이다.- 헨리 포드(자동차의 왕, 미국의 자동..
책/권하는 책 책읽는정오 2018. 5. 15. 07:30
「본래 그 자리」 멍든 인간이 위로받는 모습 하얀색 펜으로 서평을 쓰고 싶었다. 「본래 그 자리」의 새하얗고 점점이 박힌 검은 글자 표지는 '말갛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책의 내용을 무척 잘 나타낸다. 이 책에 담긴 인생은, 쉽게 물드는 연약한 인간이 검게 얼룩지는 모습이다. 태어나면서 어쩔 도리없이 상처 받기 시작하는 인간은 그나마 남은 일종의 청순함으로 살만한 희망을 준다. 맹난자 작가의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백설기 같은 글이 희망의 여운을 늠긴다. 과연 '산문의 거장'이라 불릴 만하다. 맹난자 작가가 삶을 걷다가 마주친 책들과 작가들의 모습이 마치 앙꼬처럼 들어가 있어 책은 밋밋하지 하다. 먼저 한 톨 묻어 있는 않고 정갈하게 다듬어진 글은, 덧붙여진 치장 하나 없이 민낯임에도 반들반들 윤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