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시(詩)기적절 책읽는정오 2020. 11. 5. 09:36
영원한 사랑을 꿈꿀 때 시계 한승원 우리 다음 생에는 시계가 되자 너는 발 빠른 분침으로 나는 발 느린 시침으로 한 시간마다 뜨겁게 만나자 순간을 사랑하는 숨결로 영원을 직조해내는 우리 다음 생에는 시계가 되자 먼지 알 같은 들꽃들의 사랑을 모르고 어찌 하늘고 땅의 뜻을 그 영원에 수놓을 수 있으랴 그리고 우리 한 천년의 강물이 흘러간 뒤에 열두 점 머리 한가운데서 너와 나 얼싸안고 숨을 멈추어버린 그 시계 다음 생에는 우리 이 세상 한복판에서 너의 영원을 함께 부둥켜안은 미이라가 되자 박새들의 아프고 슬픈 사랑을 모르고 어찌 하늘과 땅의 뜻을 그 영원에 수놓을 수 있으랴 열애 일기 - 한승원 지음/문학과지성사 한승원 1966년 단편소설 [목선]으로 데뷔한 이후 수많은 작품을 통해 우리 시대의 소설가로 ..
책/권하는 책 책읽는정오 2018. 5. 22. 12:04
영혼이 삶을 지나가며 겪는 아픔 한강이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은 일은 여러 큰 의미가 있었다. 우리나라 소설가도 3대 문학상(매체에서 일방적으로 붙인 타이틀이긴 하지만)을 받을 정도로 성장했다, 라는 의미. 한강 개인에게는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던 '소설가 한승원의 딸, 한강'이라는 수식을 이젠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으로 바꿔버렸다는 의미. 이렇게 소설가로 이름을 알린 한강인데, 한강은 원래 소설로 등단하기 이전에 시로 먼저 등단을 했던 작가다. 시로 등단한 후 20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시를 묶어 낸 시집이 바로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이 책이다. 그녀가 20여 년 동안 써왔던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 시집 역시 영혼이 서려있다. 날카로운 날..
글/시(詩)기적절 책읽는정오 2018. 5. 18. 07:30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한강 지음/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