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본래 그 자리」멍든 인간이 위로받는 모습

「본래 그 자리」 멍든 인간이 위로받는 모습




 하얀색 펜으로 서평을 쓰고 싶었다.

 「본래 그 자리」의 새하얗고 점점이 박힌 검은 글자 표지는 '말갛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책의 내용을 무척 잘 나타낸다. 이 책에 담긴 인생은, 쉽게 물드는 연약한 인간이 검게 얼룩지는 모습이다. 태어나면서 어쩔 도리없이 상처 받기 시작하는 인간은 그나마 남은 일종의 청순함으로 살만한 희망을 준다. 맹난자 작가의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백설기 같은 글이 희망의 여운을 늠긴다. 과연 '산문의 거장'이라 불릴 만하다. 

 맹난자 작가가 삶을 걷다가 마주친 책들과 작가들의 모습이 마치 앙꼬처럼 들어가 있어 책은 밋밋하지 하다. 먼저 한 톨 묻어 있는 않고 정갈하게 다듬어진 글은, 덧붙여진 치장 하나 없이 민낯임에도 반들반들 윤이 난다. 가끔 형편없는 글과 마주칠 때면 '글'이라는 게 지겨워지고는 하는데, 그때 맹난자의 글을 다시 꺼내 읽어 몸에 묻은 글을 닦고 싶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밥알의 녹말처럼 은근한 단맛이 느껴진다. 


특히 그의 유서나 다름없는 「사양」이나 「인간 실격」은 마치 죽은 동생의 일기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금도 나는 소중히 지니고 있다.

P. 105


 이야기는 '책' 주변을 계속 맴돌며 삶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벅찬 인생이라는 것에 '맹난자'라는 사람은 어떻게 멍들어 왔는지가 주된 내용이다. 그 아픔 속에서 꺼낸 문학이라는 희망은 독자에게 전달되는 최고의 치유다. 누군가 인생에 대해 무분별하게 떠들어대기만 한다면 그건 설교밖에 되지 않는다. 한 번이라도 책을 보며 마음이 환해져 본 적이 있다면, 어둠 속에서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면 이 글은 설교가 아닌 공감으로 다가온다. 하얀색이 있어야 더욱 검은색이 돋보이는 것처럼 반대로 어두운 아픔이 있어야만 환한 희망이 더욱 빛나보인다. 이 책은 어두운 아픔에 하얗게 쓰여진 책이다. 나도 서평을 쓰며 하얗게 쓰고 싶었다.

 글에서 나오는 작가들의 아픔에 조금이라도 동질감을 느낀다면 이 글은 공감을 넘어선다. 혼자라서 느끼는 외로움이 '같이'라서 위로되는 신비로운 사회적 판타지다. 맹난자 작가가 책을 보며 얻은 위안, 글을 쓰며 이루어낸 새로운 활력은 다시금 본래 그 자리로 돌아와 독자에게 베풀어진다. 이것이 산문이 문학인 이유다.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으로 '3명에게 도움주기'가 나온다. 내가 3명에게 도움을 주고 그 도움을 받은 사람은 또 다른 3명에게 도움을 주는 방법이다. 책은 누군가에게 위로, 혹은 그 이상의 가치 있는 감정을 전달하고 그 책을 읽은 사람이 쓴 글은 또 다른 사람에게 그 감정을 전달한다. 책을 읽고 쓰는 일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도움주기와도 비슷하다. 「본래 그 자리」를 펼치는 일은 인생의 아름다움과 관련된 일이다.

「인간 실격」의 요오조오나 「사양」의 나오지는 바로 다자이 자신의 모습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내면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전율마저 느끼며 그 유서를 거듭 읽어 내려갔던 것이다.

P. 105


본래 그 자리 - 10점
맹난자 지음/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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