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강아지」어리고 탁월한, 그리고 잔혹한 재능

어리고 탁월한, 그리고 잔혹한 재능





 사회가 재능을 닫아버리는 경우는 어떤 게 있을까. 엄마를 씹어 먹고 구워 먹는다는 등 잔혹한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됐던 '학원가기 싫은 날'을 보고 어린 작가의 출중한 재능이 눈을 감아 버릴까봐 걱정됐다. 「솔로강아지」는 초판에 담겼던 '학원가기 싫은 날'을 빼고 다른 시 아홉 편을 대신 채워 내놓은 개정판이다. 

 

 나는 대학에서 시를 배우며 누군가에게 '시'와 '시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방법을 몸에 익혔다. 시인의 표현을 더 깊이, 많이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느끼게 됐다. 이 어린 작가는 이미 '시'의 모습을 완전히 갖추고 있었다. 다른 시인과 다른 점을 찾자면 표현하는 소재뿐이었다. 이순영 작가는 나이에 걸맞은 일상적인 소재를 언어로 훌륭히 표현해내는, 다 큰 시인이 쓸 수 없는 시를 썼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성장에 따라 풍부한 계절처럼 모습을 바꿔갈 이순영 작가의 시가 기대된다.


 이 어린 작가의 멋진 예술성을 더 파헤치고 느낄 수 없을까, 하며 책 이곳저곳을 살펴보다 마음에 거슬리는 문장을 발견했다. "순영이는 시 쓰기를 좋아하지만 자주 쓰지는 않고 가끔 자기가 진짜 쓰고 싶을 때만 쓰며 살아갈거라고 합니다. 시는 순영이의 베프거든요.' '학원가기 싫은 날'이 대중들에게 거부 당하면서 창작에 대한 마음이 구겨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다. 

 같은 시인으로서 이미 비슷한 고난을 헤쳐나갔을 어머니(이순영의 어머니는 시인 김바다 씨)가 좋은 멘토가 될 것이라 위안을 삼기도 한다.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쓰며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아이를 보고 막연한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내 '쓰고 싶은 글'이 아닌 '대중에게 거부 당하지 않을 글'을 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또 든다. 

 물론 어린 작가의 역량과 솔직함을 보면 괜한 걱정이라는 안심... 걱정과 안심... 계속 반복... 앞으로 이순영의 시가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중심을 잃어버리거나 창작을 그만둬 보지 못하게 된다면 무척 아쉬울 것 같아 드는 생각이다. 


 시는 어린 아이들의 시시각각 변하는 장래희망처럼 다양한 모습을 띈다. 맨몸으로 집을 돌아다니는 오빠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아이다운 시가 있는가 하면(22P '오빠의 고추') 그 적은 세월에 어디에서 이런 '어둠'을 느꼈나 하고 깜짝깜짝 놀랄 만한 시도 있다. "어린이가 말하는 건 모두가 다 시 아닌가"(82P '시') 하며 너스레를 떠는 모습나 탁월한 감각, 강렬한 이미지 역시 볼 만하다. 뒷표지에 적혀 있는 이병철 시인의 평가처럼 공깃돌로부터 바다로 넓어져 가는 생각, 상상, 감각은 놀라웠다.

 

공깃돌이라고 하는 작은 일상적인 사물부터 바다를 연상시킨 사유의 확장력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ㅡ 이병철 시인


 공깃돌을 보고 소금 알갱이를 연상하고 공중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모습에서 바다와 소금 알갱이를 떠올렸다. 무궁화를 보고 "분홍빛 레이스 / 투명한 피부 아래 보이는 가는 핏줄" 이라는 표현을 쓴 시 '무궁화'에서는 섬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장 인상 깊은 시는 '감금'과 '고기굽기'다. 장롱의 겉무늬를 보고 감금된 사람을 떠올라다니! 내가 어렸을 떄 장롱무늬를 보며 간직하고 있었던 막연한 생각을 마치 척추 뽑듯이 쑥! 하고 뽑아낸 느낌이었다. 불 태워서 나오게 하려는 강렬한 이미지가 인상 깊다. '고기굽기'에서 선택한 '말랑한 피가 솟는다', '고기는 온몸으로 운다'라는 표현은 쉽고도 재밌다.


 육즙이 빠져나가는 장면을 보고 모두가 생각할 법 하면서도 언어로는 쉽게 하지 못했던 표현 아닐까. 우리에게 가장 좋은 시는 이런 시라고 생각한다. 읽는 순간 아! 그렇지! 하고 다 마른 줄 알았던 우물에서 약수 한 바가지 퍼올리듯 감성을 끄집어 내주는 시. 아직 딱딱하게 굳지 않은 말랑말랑한 생각. 이순영의 시가 좋아질수록 32페이지의 '학원가기 싫은 날' 제목을 달고 있는 텅빈 페이지가 아쉽다.


 「솔로강아지」에 삽입된 그림은 이해가 안 된다. 인터넷 소설에서 글 대신 감정을 표현하는 이모티콘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이는 결코 시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166페이지의 시 '토마토'를 보고 그 이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언젠가 화가나 뭉개진 토마토처럼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을 그려보다 불현듯 이순영의 토마토를 떠올리고 그 이미지를 그제서야 이해할 때, 그때만이 느낄 수 있는 은밀한 문학적 쾌감을 앗아가 버렸다. 


 이해를 돕기 위해 넣은 출판사의 의도는 알겠지만 언어로 그려야 할 세상을 그림으로 채우다니... 시 옆에 놓인 그림을 바라봄으로써 '시'로 상상하고 그릴 수 있는 세계를 그림 한 장에 가두어 버렸다. 머릿속 풍부한 세계를 잃어버린 느낌. 문학 작품 대부분 그림이나 사진 없이 오로지 백지와 글로 이루어져 있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으로 채우라는 의미다. 그게 허구를 바라보며 기대하는 문학적 상상 아니던가. 출판사의 과도한 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설로 치자면 "혹시 이해 못할까봐 말해주는 건데, 여기서 주인공이 '이런' 행동을 한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거야. 결말은 '이렇고', 아! 몇 페이지 전 쯤에 복선과 암시가 깔려 있으니 다시 한 번 봐봐" 정도의 친절이랄까?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페이지를 양분한 영어 번역이 왜 있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영문으로도 다시 한 번 읽어보라는 뜻일까? 아니면 이대로 해외 출판을 하려는 걸까? 아쉽기보다는 의도를 짐작할 수 없다. 악의적으로 추측한다면 이순영의 '시'를 보여주는 책이 아닌 이순영의 '시'를 재료로 만든, 멋들어지게 꾸민 '상품'이라는 느낌이다. 뭐 물론 책의 구성과 디자인 약간 아쉽긴 하지만 이순영이라는 재능을 알려주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다음에 보는 '이순영'은 온전하게 시만을 즐길 수 있는 '이순영'이길 바란다. 


솔로 강아지 - 10점
이순영 지음, 최지혜 옮김, 조용현 그림/가문비(어린이가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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