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상자 위의 소년」존엄성을 잡아먹는 괴물

  존엄성을 잡아먹는 괴물

 쉰들러 오스카가 만들어 준 자리, 키가 작아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기 위해 올라가야 했던 그 '나무상자'는 주인공 리언에게 생존이었다.

 그 나무상자는 홀로코스트라는 최악의 광기에 현기증을 느끼던 이들의 마음 속에 깊게 뿌리 박고 근사한 그늘이 되어준다.

 「나무 위의 소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을 막아낸 독일인 '오스카 쉰들러'의 '리스트'에 올랐던 가장 어린 리언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았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지며 유명해진 '쉰들러 리스트'는 오스카 쉰들러가 새로 지은 공장에서 일할 유대인의 명단으로, 수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기게 해준 '면죄부'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죄인이었던 리언은 전쟁이 오기 전 천진난만했던 시절부터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 고통의 세월까지 선명하게 책 안에 담았다. 

 이야기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이렇게 순식간에 읽어버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사건의 변화에 따라 흘러가는 주인공의 감정 표현이 무척 자세해 일품이다.

 이 책에서 지루한 부분을 뽑으라면 너무 자세한 나머지 땀을 삐질 흘리게 되는 초반부의 가족과 마을 구성원에 대한 설명뿐이다.

 고통과 광기에 휩싸여 변하는 사람들, 이전 모습을 영원히 '상실'해버리는 장면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간 겪은 일 때문에 아버지가 변했음을 알 수 있었다. 힘없고 여윈 모습만이 다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좀 더 근본적인 부분이 변해 있었다. 나치는 그의 힘뿐만 아니라(이후 수년 동안 놀라울 정도의 힘을 발휘하긴 했지만), 경쾌한 걸음걸이의 비결이었던 자신감과 자부심까지도 빼앗아 갔다.

P. 63

 

 표지를 보면 「안네의 일기」를 뛰어넘는 감동 실화라는 문구가 있다.

 이 책이 「안네의 일기」와 비교되는 것은 영웅적인 인물 '오스카 쉰들러'를 바라본 게 아니라 평범한 개인, '리언'을 바라본 다는 점이다.

 리언도 안네처럼 거대한 두려움과 마주한 어린 아이였을뿐이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그 어린 생명들은 나름의 투쟁을 이어간다.

 리스트에서 이름이 지워진 자신을 독일군에게 드러내는 용기, 엄마와 아빠 품에 뛰어들지 않고 꾹 참아내는 끈기는 온실 밖에서 자라는 거친 야생화를 보는 것같이 기특하다.

 책 마지막에 나오는 리언의 아들과 딸의 헌사를 살펴보면 그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쉰들러 리스트의 가장 어린 아이'로만 살아온 게 아니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그게 당연한 일임에도!).

 한 여자의 남편으로, 두 아이의 아빠로, 또 손자 손녀의 할아버지로, 어디서나 사랑 받고 존중 받아야 할 마땅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왜 충격을 받아야 하는가.

 홀로코스트라는 괴물은 여태껏 얼마나 많은 이들의 인생을 삼켜버린 것인가.

 또한 그 괴물의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무시무시한 검은 뱃속에서 1,500명의 리스트를 지켜낸 오스카 쉰들러는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이었단 말인가.

 「나무 상자 위의 소년」은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버리는 과정과 그 속에서 지켜내는 과정 전부가 절묘하게 담겼다.

 어렸을 때 보았던 전래동화처럼 일종의 권선징악을 보는 것 같아 어쩐지 행복해지는 책이다. 

 

나무 상자 위의 소년 - 10점
리언 레이슨 외 지음, 박성규 옮김/꿈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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