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시(詩)기적절 책읽는정오 2020. 11. 5. 09:36
영원한 사랑을 꿈꿀 때 시계 한승원 우리 다음 생에는 시계가 되자 너는 발 빠른 분침으로 나는 발 느린 시침으로 한 시간마다 뜨겁게 만나자 순간을 사랑하는 숨결로 영원을 직조해내는 우리 다음 생에는 시계가 되자 먼지 알 같은 들꽃들의 사랑을 모르고 어찌 하늘고 땅의 뜻을 그 영원에 수놓을 수 있으랴 그리고 우리 한 천년의 강물이 흘러간 뒤에 열두 점 머리 한가운데서 너와 나 얼싸안고 숨을 멈추어버린 그 시계 다음 생에는 우리 이 세상 한복판에서 너의 영원을 함께 부둥켜안은 미이라가 되자 박새들의 아프고 슬픈 사랑을 모르고 어찌 하늘과 땅의 뜻을 그 영원에 수놓을 수 있으랴 열애 일기 - 한승원 지음/문학과지성사 한승원 1966년 단편소설 [목선]으로 데뷔한 이후 수많은 작품을 통해 우리 시대의 소설가로 ..
정오 책읽는정오 2019. 4. 19. 13:39
YES24 온라인 서점에서 북클럽에 담아낸 책이 1,000권이 넘어간다. 하루에 1권씩 읽어도 3년 가량 걸리는 양이다. 다 읽지도 못할 것을 알고 있지만 멈추기 힘들다. 지금 이 책을 놓쳐버리면 다시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는 불안감이다. 혹은 읽고 싶어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욕구가 있다. 볼만한 책이 있는데 지나치지는 않았을까 하고 자꾸만 페이지 수 위를 왔다 갔다 서성인다. 크레마로 다운 받았던 천여 권의 책은 전부 삭제했다. 로딩도 오래 걸리고 추가하는 족족 다운로드하기도 지쳤다. 읽기 직전에만 다운 받는 걸로 방침을 세웠다. 어째 책을 읽는 시간보다 고르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느낌. 여자들이 쇼핑에 중독되는 이유가 이런 것과 비슷할까? 내 북클럽에 추가해놓으면 이 책에 담긴 지식과 ..
책/서평 책읽는정오 2019. 4. 19. 08:30
존엄성을 잡아먹는 괴물 쉰들러 오스카가 만들어 준 자리, 키가 작아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기 위해 올라가야 했던 그 '나무상자'는 주인공 리언에게 생존이었다. 그 나무상자는 홀로코스트라는 최악의 광기에 현기증을 느끼던 이들의 마음 속에 깊게 뿌리 박고 근사한 그늘이 되어준다. 「나무 위의 소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을 막아낸 독일인 '오스카 쉰들러'의 '리스트'에 올랐던 가장 어린 리언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았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지며 유명해진 '쉰들러 리스트'는 오스카 쉰들러가 새로 지은 공장에서 일할 유대인의 명단으로, 수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기게 해준 '면죄부'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죄인이었던 리언은 전쟁이 오기 전 천진난만했던 시절부터 인간 취급을 받지 ..
책/서평 책읽는정오 2019. 4. 16. 09:29
어리고 탁월한, 그리고 잔혹한 재능 사회가 재능을 닫아버리는 경우는 어떤 게 있을까. 엄마를 씹어 먹고 구워 먹는다는 등 잔혹한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됐던 '학원가기 싫은 날'을 보고 어린 작가의 출중한 재능이 눈을 감아 버릴까봐 걱정됐다. 「솔로강아지」는 초판에 담겼던 '학원가기 싫은 날'을 빼고 다른 시 아홉 편을 대신 채워 내놓은 개정판이다. 나는 대학에서 시를 배우며 누군가에게 '시'와 '시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방법을 몸에 익혔다. 시인의 표현을 더 깊이, 많이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느끼게 됐다. 이 어린 작가는 이미 '시'의 모습을 완전히 갖추고 있었다. 다른 시인과 다른 점을 찾자면 표현하는 소재뿐이었다. 이순영 작가는 나이에 걸맞은 일상적인 소재를 언어로 훌륭히 표현해내는, 다 큰 시인이 ..
영화 책읽는정오 2019. 4. 1. 17:49
당당히 포스트 한 자리를 차지했지만 생각보다 출연 빈도가 적어 언제 또 모습이 나오나, 하고 아쉬워했던 주인공이다. 극중 내내 꾀죄죄한 몰골로 나오지만, 첫 등장부터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특유의 신비한 눈빛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앞으로 성장이 더욱 기대되는 여배우다. 세상에 이렇게 예쁘고 멋있는 여자가 있었다니! 원더우먼 세대가 아니었던 사람들에게 지난 날 왜 원더우먼에 열광했었는지 몸소 깨닫게 한다. 갤 가돗은 이게 정말 걸크러쉬지! 하며 우아함과 강인함으로 관객을 사로 잡아버렸다. 이스라엘 국적인 그녀는 실제 2년간 군생활을 했다고 하니, 그런 강인함이 몸에 베어 멋진 현대판 원더우먼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싶다. 킥 애스의 부제를 영웅의 탄생이 아니라, 힛걸 - 클로이 모레츠의 탄생으로 바꿔도 ..
책/서평 책읽는정오 2019. 3. 20. 05:14
내 방에 누군가 들이는 일 어렸을 때 그랬다. 집에 들어오면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책을 봤다. 나 말고 아무도 들일 생각이 없었던 방안에서 혼자 책을 보는 시간은 특별했다. 결말이 보이지 않는 소설처럼 영원히 그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책을 보는 일은 내세울만한 단 하나의 우월감이었고 누군가 그 우월감으로 가득싸인 방에 침범할까 겁나 영역을 지키는 짐승처럼 촉각을 곤두세웠다. 뫼비우스 띠에 발이라도 얹은 듯이 겉돌고 있었다. 의 주인공, 소희와 같은 열다섯 살이었다. 소희는 아빠의 죽음과 엄마의 재혼으로 고모 집에서 얹혀 사는 아이였다. 매사에 눈치를 보고 꿈인 것을 확인한 후에야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로 자란다. 이야기가 시작되며 엄마를 다시 만나고 돈이 많은 새아빠와 같이 살게 된다. 아..
책/서평 책읽는정오 2018. 7. 29. 13:30
「미라클 일주일 지갑」 줄일 수 있는 지출은 반드시 있다 나름대로 아낀다고 아끼는 것 같은데 왜 항상 통장 잔고는 간당간당할까? 월급은 통장을 스쳐지나갈 뿐이라는 말이 절로 실감나는 요새 물가다. 이제 막 월급을 받기 시작한 사회 초년생부터 가정에 자녀를 둔 부부, 은퇴를 앞둔 노년까지 가계 관리에 필요성을 느낀다면 「미라클 일주일 지갑」을 참고해보자. 지은이 요코야마 미쓰아키는 일본 금융·저축 분야에서 1인자로 꼽히는 사람인데, 특이하게도 돈 많은 사람과는 일을 하지 않는 재테크 컨설턴트다. 평범한 가정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붙잡고 기적을 바라는, 이른바 '소시민'을 상대로 돈관리를 해주며 무려 1만 명의 인생을 플러스로 바꿨다고하니 신뢰가 간다. '나 정도의 수익으로도 가계 관리가 가능할까?' 하는 사..
독서 책읽는정오 2018. 7. 28. 19:00
「음식의 심리학」 요약과 밑줄 긋기 14쪽 부정적 육체경험은 (빨라지는 맥박, 땀 흘리기, 열나기, 눈물, 숨 가쁨) 도취감을 불러일으키는 마조히즘.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통증)이다.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험정신이 강하고 아슬아슬한 위험을 즐긴다. 변화와 강렬한 기분과 모험을 갈망한다. 단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남을 도와주기를 좋아하며 사회적인 성격이다. 27쪽 단맛을 좋아하고 쓴 것을 싫어하는 건 타고난다. 양수가 달면 많이 마시고 쓰면 적게 마신다. 동굴에 살던 시대에 단맛을 주는 음식이 주로 에너지를 주는 먹거리였고, 쓴맛이 나는 음식은 주로 독이 든 먹거리였다는 유전적 근거를 둔다. - 사람의 유전자에 이토록 오랫동안 경험이 쌓인다는 사소한 근거를 볼 때마다 무척 놀랍고 신비롭다. 29쪽 ..